글쓰기/경험과 삶

메이플스토리 추억

lunadelanoche 2020. 12. 23. 00:40

메이플스토리를 처음 접한 건 아마 2004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꾸밀 수 있는 나의 캐릭터가 너무 좋았다. 제일 친했던 친구랑 매일 학교 끝나면 온라인 상에서 만나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꼭 내가 나를 꾸미고서 진짜로 밖을 돌아다니는 것 같은 대리만족이 있었다. 그때는 배를 타고 시간이 걸려서 오르비스에 갈 수 있는 방법만 있었기 때문에 오르비스, 루디브리엄은 빅토리아 아딜랜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해외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마법사, 그 중에서도 힐이라는 스킬, 자동으로 hp를 올려주는 그 힐을 쓸 수 있는 법사라고 해서 힐법이라고 했는데 이 직업이 너무나도 좋았다. 파티퀘스트를 하면 파티원들의 hp를 다 올려줄 수 있었기 때문에 파티원으로는 힐법이 한 명 씩은 꼭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내가 항상 쓸모있다는 생각을 한건가? 내 레벨 자체는 그렇게 많이 올리질 못했지만 퀘스트를 깨는 일들이 진짜 재밌었다. 돈 모으는 것도 재밌었고, 무엇보다 문화상품권이 5천원, 만원 생기는 족족 다 메이플 캐시템을 지르는데 쓰였다.

무엇보다도 밤에 안방에서 자는 엄마, 아빠 몰래 안방 바로 옆에 붙어 있던 컴퓨터방에 들어가 메이플을 켤 때가 완전히 스릴있었다. 게임 할 맛이 났다. 왜 몰래 하는게 이렇게 재밌을까? 참 웃기는 심리다. 청개구리심보인가. 밤에는 게임 하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깨고 하지 마라고 하니까 더 하고 싶은 이 심리 말이다. 반대로 청소의 경우, 청소 내가 스스로 하려고 했는데 막 하려던 참에 청소하라고 잔소리하면 딱 하기 싫어진다.

그러고나서 2020년. 16년이 흘러 메이플스토리에 접속했다. 예전 아이디는 해킹을 당했는지 로그인도 안 된다. 새로 하나를 만들고 이런저런 보안 설정들을 귀찮지만 다 해 놓고 직업을 보는데 와...정말 신세계가 됐다. 예전 추억으로 같은 직업을 다시 키워보자는 생각에 새로 생긴 직업들을 다 제치고 맨 뒤에 있던 모험가를 클릭했다. 은근 재밌어서 계속 하는데 스킬트리에 나오는 스킬을 어떻게 찍어야할지 검색을 아무리 해 봐도 다 2011년 전 버전들 뿐이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스킬트리에 대해 쓴 블로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점점 재미를 잃어가고 에이 모르겠다 하고 새로운 직업 중 난이도 상이라고 쓰여 있는 호영을 선택했다. 도사라는 직업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빅토리아 아일랜드에서 시작할거라는 편견을 과감히 깨부수고 아예 새로운 행성에서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다양한 스토리가 너무 많아서 약간 지겹기도 했다. 다 안 읽고 그냥 스페이스바를 막 눌렀다. 하다 보니 레벨업이 쑥쑥 되서 만든지 이틀만에 레벨 90이 되었다. mp를 써서 하는 공격 한 방에 예전엔 죽이지 못했던 애들을 잡는 걸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오르비스에 있는 몹들이 너무나도 귀엽다. 나는 커닝시티, 페리온, 약간의 어둠이 있는 모든 맵들은 다 별로고 초록초록의 엘리니아, 오르비스가 가장 느낌이 좋다.

레벨이 빨리 오르는 게 제일 재밌다. 나같이 자잘한 보상을 필요로 하는 백수에겐 참 시기적절한 게임인 것 같다. 16년을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으면서 진화를 거듭한 메이플스토리 제작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내 나이는 20세 이상 채널에도 들어갈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이 나이가 되가지고 메이플...? 이란 생각도 잠시 했는데, 재밌으면 됐다. 나에겐 눈에 보이는 성과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메이플을 하면서 더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