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경험과 삶

영어학원 선생님으로서 9개월

lunadelanoche 2021. 12. 16. 01:00

처음 내가 구한 자리는 보조교사였다. 원장님이 운영하는 학원에 선생님이 둘인 동네 영어학원인데 그 선생님 둘을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애들이 해야할게 많은데 그중에서 나는 문제집과 문법문제 푼 것 채점, 단어시험 등을 봐줬다. 3년이면 해리포터 원서를 줄줄 읽을 수 있다고 장담하는 곳이었다. 어린이 원서가 많아서 나도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영어학원에 다니는 것 자체가 지긋지긋해서 죽도록 싫은걸 잠시 접었다. 조금 남는 시간에 책을 읽을라 치면 그사이에 원장님 눈에 띄면 그렇게 나를 불러서 일을 시킨다. 그지...시급알반데 그냥 시간 죽치고 있으면 눈꼴시렵겠지.

원장님이 임신을 한 상태였는데 거의 출산일이 다가오고 산후조리를 하면서 학원에는 나, 선생님 두 분만 거의 있었다. 그사이 선생님 한 분은 그만 뒀다. 새로 뽑은 선생님이 다리를 심하게 다쳐 두달간 입원해야 한다고 내가 대타로 잠시만 맡기로 했다. 중간에 고민이 많이 되서 사실 앞서 나보고 레벨 낮은 애들만 담임 맡는건 어떠냐고 했을 때 옛날에 우울증 알아서 지금 책임지는건 못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알겠다고 했다. 다행히 이해해주셨다. 그런데 또 한 선생님이 그만두었다. 다들 각자 이유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힘들어서 그만둔 것 같다. 1시에 시작해서 7시반까지 쉬는시간이 없다. 물마시고 화장실갈 시간이 겨우 겨우 있다. 내가 신경써서 만들어야 한다. 결국 나는 임시로 맡던 반 정식 담임이 되었다. 원장님이 복귀하면서 물어볼게 있으면 바로 바로 물어보라고 하셨고 가르치는 방식, 내용 등 배울 점이 많겠다 싶었다.

요즘 너무 힘들다. 하기 싫어하는 애들, 집에 가고 싶어하는 애들, 졸려서 죽으려고 하는 애들 다 너무 불쌍하다.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 엄마들 눈치보면서 내내 신경써야하는 원장님도 불쌍하다. 한명이라도 끊을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불쌍하다. 그래 어여삐 여기자. 나는 4월까지가 계약기간이다. 그안에 그만두는 상상을 매일 하지만 1) 조울증 치료 일환으로 멀쩡히 사회적으로 기능하는 모습 보여주기 2) 코로나 시국에 구하기 힘든 내가 인정받으며 할 수 있는 일 3) 4월까지만 버티면 내가 원하는 만큼의 저축액을 만들 수 있음 - 이 세 가지 이유로 나는 상상을 휙휙 지우려고 노력한다. 근데 자려고 누우면 머릿속이 복잡하다. 안지워진다. 불쌍한 사람들 얼굴이 삥글삥글 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도 그만 묻고 싶은데 나는 뭘 그렇게 누구한테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건지 나를 너무 혹사시킨다.

니가 나라를 구할거냐며 정신과 의사가 너무 열심히하지 말라고 했다. 근데 보스가 잊을만하면 압박을 주는데 어떻게 열심히 안하지? 다 티가 나는데...난 요령이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