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책

어제 / 아고타 크리스토프

lunadelanoche 2021. 6. 13. 12:22

거짓말

22 내가 하는 거짓말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몹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은 측은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껌뻑였고, 위로의 말을 애써 찾으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는 저녁 내내 감히 웃지 못했다. 내 거짓말의 효과는 대충 그 정도였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방마다 불을 켜고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흐려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될 때까지 나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나는 몇 시간 동안 내 방 안을 거닐었다. 책들은 탁자와 선반들 위에 잠들어 있었다. 침대는 차가웠지만 깨끗했고, 자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새벽이 가까워지고 맞은편 집들의 창문에는 아직 불이 켜지지 않았다.
나는 문이 잠겼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나서 잠을 청하디 위해 너를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너에 대한 추억은 나의 다른 기억들과 마찬가지로 곧 사라져버리는 잿빛 영상뿐이었다.
어느 겨울밤 내가 넘었던 시커먼 산들처럼,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깼을 때 보았던 낡아빠진 농가의 방처럼, 십 년 전부터 일해 온 공장처럼, 너무 보아서 이제는 더 보고 싶지 않은 풍경처럼.
곧이어 더 생각해낼 것이 없어졌고, 남아 있는 것들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추억뿐이었다. 나는 울적해져서 울고 싶었지만, 울만한 이유가 없어서 울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