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60

니코마코스 윤리학 / 아리스토텔레스 (박문재 옮김)

37 (1098a) 이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고유한 일은 이성을 따르거나 이성과 연관된 혼의 활동이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과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이라는 측면에서는 서로 동일하다. 예컨대, 키타라를 연주하는 사람은 일이라는 측면에서는 서로 동일하다. 예컨대, 키타라를 연주하는 사람이나 키타라를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면, 후자의 탁월성은 그 일의 명칭에 덧붙여진 것일 뿐이다(키타라를 연주하는 사람의 일은 키타라 연주이고, 키타라를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의 일도 키타라를 훌륭하게 연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일은 혼의 이성적 활동 또는 행위를 말하고, 훌륭한 인간의 일은 이런 활동이나 행위를 훌륭하게 수행하는 데 있다. 그리고 각각의 일은 자신에게 걸맞는 미덕을 따라 수행해야..

후기/책 2023.07.09

아리스토텔레스x조대호 (아르테, 2019)

158 '명예를 추구하지 말라'고 가르치기보다는 '명예를 올바로 추구하라'고 가르치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한 교육이지 않을까? 일리아스는 이런 교육에 가장 알맞은 책이었다. 교육은 본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순화된 실현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자신이 타고난 성질을 부정하라는 교육에 사람들은 등을 돌릴 것이다. 알렉산드로스같이 성격이 강한 인물이라면 더욱더 그랬을 것이다. 160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동 경로는 대개 비잔티온과 흑해의 남쪽 및 북단에 걸쳐 있다. 오늘날의 이스탄불을 거쳐 흑해 건너 크림반도 근처까지 갔다는 것이다. 182 뤼케이온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연구한 사람들은 '페리파테티코이Peripatetikoi'라고 불렸다. '소요학파'라는 한자어 번역은 마치 신선 모임 같은 탈속의 분위..

후기/책 2023.06.29

유리 젠가 / 이수현

목차 11 시체놀이 55 유리 젠가 101 달팽이 키우기 145 발효의 시간 뒷면 추천사처럼 보이는 문장 한 구절때문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기간제 교사, 취업 준비생 등 현 사회의 사회적 리얼리티를 반영하는 아웃사이더의 삶을 냉정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옮기고 싶은 구절은 없었지만 소설을 좋아한다면 MZ세대(이 말을 정말 싫어하긴 하지만 뭉뚱그리기 쉬워서)라면 공감할만한 내용이 많다. 살기 어려운 현실이지만 그냥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이 벅차오르게 만들고서 끝이 난다. 보통 단편은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 책 속 네 개의 단편을 읽고 나니 정말 맛있게 차려진 채식 식단 한 그릇을 뚝딱 기분 좋게 끝낸 기분이다. 배 부르지만 기분 좋게 배부른, 고기 먹고 속 더부룩한 느낌이 아닌 그런 느낌적인 ..

후기/책 2022.03.10

침입자들 / 정혁용

12 '제길, 그래도 치나스키보다는 나은가?'라고 생각했다. 비 내리는 새벽의 뉴올리언스에 내린 건 아니니까. 49 "언젠가 읽은 것 같은데 코알라는 스물네 시간 중에 스물세 시간을 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음, 너도 스물세 시간을 쓰는 것 같아." "뭘?" "얘기하는 데." 나의 대답에 주창이가 한참을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다 대답했다. "괜찮은데. 코알라. 마음에 들어." 의외의 반응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기분이 나빴을 텐데 말이다. 내 많은 단점 중의 하나다. 굳이 물으면 굳이 속마음을 말해버리는 것. 비아냥거리는 성격이라는 얘길 많이 듣고 살았는데 어쩌겠는가. 벤댕이 소갈딱지인 것을. 하지만 아주 드물게 개의치 않는 성격의 사람을 만나곤 했는데 주창이가 그런 것 같았다. 162 "내겐 ..

후기/책 2022.03.10

고래 / 천명관

65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해안엔 희미한 달빛 아래 파도가 부서지고 있었다. 그녀는 모래밭에 쭈그리고 앉아 해수면 위에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하얗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다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바다 한복판에 집채만한 물고기가 솟아오른 것이었다. 부두에 처음 도착한 날 목격했던 바로 그 대왕고래였다. 몸길이만도 이십여 장에 가까운 고래는 등에 붙어 있는 숨구멍으로 힘차게 물을 뿜어냈다. 그녀의 배 한복판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다. 그것은 죽음을 이겨낸 거대한 생명체가 주는 원초적 감동이었다. 88 그 안에선 사내들이 칼을 들고 어마어마하게 큰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 물고기는 언젠가 그녀가 바닷가에서 보았던 바로 그 대왕고래였다. 사내들이 작두만한 칼로 거침없이 고래의 배를 썩썩..

후기/책 2021.12.22

나목 / 박완서

중간중간 적고 싶은 구절이 있었지만 멈추고 싶지 않아 쭈욱 읽은, 정말 맛있게 읽은 소설. 옥상 위의 민들레꽃을 쓰셨다는 작가님. 학교 국어 시간에 작품을 읽은 게 전부, 엄마가 성함 몇 번 얘기한 걸 들은 게 전부였는데 왜 박완서가 대단한지 알게해 준 작품 - 나목. 우리 할머니가 20대 때 미군부대에서 타자쳤다는데 그때 데이트하던 사람과 극장 가서 영화도 보고 빵도 먹고 그랬다는데 소설 속 주인공 같았을까. 주인공처럼 사람이 죽어나간 걸 눈 앞에서 목격도 했다는데, 아버지는 가족을 버린거나 다름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있었던, 20대의 우리 할머니 상상도 못했는데 소설이 상상할 수 있게 해줬다. 박완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후기/책 2021.12.16

토지 2 / 박경리

102 아따 긴 짐승도 한 여름 묵고 한 겨울 잠자는데 사램이 일 년에 한 분 묵고 우찌 살 기요. 검은 것도 흰 기라 카는 세상에 달을 해로 치믄 어떻고 열흘을 한 해로 친다 캐도 머가 그리 죄 되겄소. 일 년 열 두달도 다 사램이 맨든 기고 노래도 다 사램이 맨든 긴데 에누리 없이 사는 사람 있던가? 그래도 세상에는 거지겉이 선한 백성은 없을 기구마. 가진 기라고는 바가지 한 짝, 하루 한두 끼믄 고만 아니오? 집도 없고 절도 없고 풀잎을 이불 삼아 발 닿는 곳이 내 집인데 무신 탐심이 있겄소. 세상에 호강하는 연놈치고 도적질 안 하는 거 없이니께요. 안 그렇소? 아지매. 193 황금더미에 올라앉은 꿈을 꾸면서, '누구 마음대로?' 평산의 꿈속에 미륵님이 나타나서 빈정거리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평산의..

후기/책 2021.09.21

영란 / 공선옥

56 나는 한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은 없지만, 가끔, 다른 곳을 꿈꾸곤 했다. 다른 나라가 아닌, 그야말로 다른 곳이다. 그 다른 곳은 늘, 따뜻한 곳이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일 년 내내 따뜻한 곳. 따뜻하고도 시원한 곳. 과일을 주식으로 먹으며 살아가는 곳. 그래서 그곳의 공기와 그곳 사람들의 몸에서도 과일 향이 나는 곳. 사람들이 주로 나무와 꽃을 가꾸는 일을 하며 사는 곳. 누가 누가 돈을 더 잘 버느냐, 가 아니라 누가 누가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가꾸느냐가, 가장 중요한 물음이 되는 곳. 내가 남보다 더 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지 않은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곳,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261 생명은 태동할 때도 눈물겹고 살아갈 때도 눈물겹고 소멸할 때도 눈물겹다. 어쩌면 세상..

후기/책 2021.09.21

토지 1 / 박경리

126 머니머니 해도 젤 좋은 건 날라댕기는 새라. 사람 사는 기이 풀잎의 이슬이고 천년만년 살 것같이 기틀을 다지고 집을 짓지마는 많아야 칠십 평생 아니가. 믿들 기이 어디 있노. 늙어서 벵들어 죽는 거사 용상에 앉은 임금이나 막살이하는 내나 매일반이라. 내사 머엇을 믿는 사람은 아니다마는 사는 재미는 맘속에 있다 그 말이지. 두 활개 치고 훨훨 댕기는 기이 나는 젤 좋더마. 127 윤보는 정말 속 편한 사내였다. 훌륭한 목수의 기량을 지녔으면서도 돈을 탐내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맡아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음이 내켜 일자리로 떠나게 되면 이번에는 설마 목돈 쥐고 와서 땅뙈기 한 마지기라도 사겠지, 이번에야말로 돈 좀 남겨다가 집 손질이라도 해서 어디 불쌍한 여자 얻어살지 않을런가 하며 남의 일이..

후기/책 2021.09.10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 김욱동 옮김)

31 노인은 바다를 늘 라 마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이곳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바다를 부를 때 사용하는 스페인 말이었다. 물론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바다를 나쁘게 말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조차 바다를 언제나 여자인 것처럼 불렀다. 젊은 어부들 가운데 몇몇, 낚싯줄에 찌 대신 부표를 사용하고 상어 간을 팔아 번 큰돈으로 모터보트를 사들인 부류들은 바다를 엘 마르라고 남성형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들은 바다를 두고 경쟁자, 일터, 심지어 적대자인 것처럼 불렀다. 그러나 노인은 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으며, 큰 은혜를 베풀어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무엇이라고 말했다. 설령 바다가 무섭게 굴거나 재앙을 끼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바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생각했다. 달이 여자에게 영향을 미치..

후기/책 2021.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