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나는 한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은 없지만, 가끔, 다른 곳을 꿈꾸곤 했다. 다른 나라가 아닌, 그야말로 다른 곳이다. 그 다른 곳은 늘, 따뜻한 곳이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일 년 내내 따뜻한 곳. 따뜻하고도 시원한 곳. 과일을 주식으로 먹으며 살아가는 곳. 그래서 그곳의 공기와 그곳 사람들의 몸에서도 과일 향이 나는 곳. 사람들이 주로 나무와 꽃을 가꾸는 일을 하며 사는 곳. 누가 누가 돈을 더 잘 버느냐, 가 아니라 누가 누가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가꾸느냐가, 가장 중요한 물음이 되는 곳. 내가 남보다 더 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지 않은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곳,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261 생명은 태동할 때도 눈물겹고 살아갈 때도 눈물겹고 소멸할 때도 눈물겹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생명은 눈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눈물이 없이는, 그 어떤 생명도 생겨날 수 없고 살아갈 수 없고 소멸되지 않을 것 같다. 복숭아꽃 잎이 뚝 떨어져 내릴 때, 화들짝 놀라는 것이 실은 눈물이 출렁하는 순간임을 나는 알겠다. 바람이 건듯 불 때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실은 내 눈물이 흩날리는 순간임을. 내 사랑들이 남긴 눈물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듯이, 인자의 배 속에 둥지를 튼 생명을 이룬 눈물이 인자에게 살아갈 힘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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