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책

니코마코스 윤리학 / 아리스토텔레스 (박문재 옮김)

lunadelanoche 2023. 7. 9. 04:33

37 (1098a) 이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고유한 일은 이성을 따르거나 이성과 연관된 혼의 활동이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과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일이라는 측면에서는 서로 동일하다. 예컨대, 키타라를 연주하는 사람은 일이라는 측면에서는 서로 동일하다. 예컨대, 키타라를 연주하는 사람이나 키타라를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면, 후자의 탁월성은 그 일의 명칭에 덧붙여진 것일 뿐이다(키타라를 연주하는 사람의 일은 키타라 연주이고, 키타라를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의 일도 키타라를 훌륭하게 연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일은 혼의 이성적 활동 또는 행위를 말하고, 훌륭한 인간의 일은 이런 활동이나 행위를 훌륭하게 수행하는 데 있다. 그리고 각각의 일은 자신에게 걸맞는 미덕을 따라 수행해야 훌륭하게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인간에게 좋음은 미덕에 걸맞은 혼의 활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미덕이 여러 가지라면 가장 훌륭하고 가장 완전한 미덕에 걸맞은 혼의 활동이 인간에게 가장 좋음이다. 
이런 활동은 일생 지속해야 한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봄이 오는 것도 아니듯, 사람도 하루아침에 또는 단기간에 복되고 행복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48 인간이 하는 모든 일 중에서 미덕에 따른 활동만큼 지속적인 것은 없고, 그런 활동들은 학문적 지식을 얻기 위한 활동보다도 더 지속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미덕에 따른 활동 중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활동들이 더 지속적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그런 활동들을 아주 기꺼이 그리고 지속해서 해나가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런 활동들이 망각되지 않는 이유도 거기 있다. 
따라서 행복한 사람은 그런 지속성을 지닐 것이므로, 일생 행복하다. 그는 언제나 또는 어떤 다른 일보다 더 우선해서 미덕에 따른 것을 행하거나 생각할 것이고, 또한 그가 "진정으로 좋고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라면, 운에 따른 인생의 온갖 우여곡절을 가장 고귀하고 지극히 품위 있게 견뎌낼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많은 일이 우연히 일어난다. 작은 행운이나 불행은 분명히 삶의 추를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하지는 못하지만, 좋은 쪽으로 큰일이 많이 생기면 삶은 더 행복해진다. (그런 일은 그 자체로 삶에 아름다움을 더할 뿐 아니라, 고귀하고 훌륭하게 그런 일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쁜 쪽으로 큰일이 많이 생기면, 고통을 초래하고 많은 활동을 방해해 행복을 억누르고 망친다. 하지만 그럴 때도 사람이 고통에 무감각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혼의 고귀함과 위대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불운을 묵묵히 견뎌낸다면, 그 고귀함은 빛을 발한다. 

82 (1109a) 어떤 것에서는 모자람이 중간에 있는 것과 더 대립하고, 어떤 것은 지나침이 중간과 더 대립한다. 예컨대, 용기와 더 많이 대립하는 것은 지나침이 무모함이 아니라 모자람인 비겁함이고, 절제와 더 많이 대립하는 것은 모자람인 무감각함이 아니라 지나침인 낭비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두 가지 때문인데, 그중 하나는 개별적인 미덕 자체에서 비롯한다. 이때 우리는 양극단 중 어느 하나가 중간과 더 가깝고 유사하므로, 이 극단이 아니라 다른 극단이 중간과 더 대립한다고 여긴다. 예컨대, 무모함은 용기와 더 유사하고 가깝지만, 비겁함은 용기와 덜 유사해 보이므로, 우리는 비겁함이 용기와 더 대립한다고 여긴다. 중간에서 더 멀리 떨어진 것이 중간과 더 대립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별적인 미덕 자체에서 비롯하는 이유 하나다. 
다른 이유 하나는 우리 자신에게서 기인한다. 자신이 본성적으로 더 끌리는 것이 중간과 더 대립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는 본성적으로 즐거움에 더 끌리므로, 절제보다는 무절제로 기울기가 더 쉽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이끌리는 것을 중간과 더 대립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런 이유에서 지나침인 무절제가 절제와 더 대립한다. 

84 (1109b) 또한, 자신이 어떤 것에 쉽게 끌리는지도 살펴야 한다. 사람마다 본성적으로 끌리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어디서 즐거움을 느끼고 어디서 고통을 느끼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끌리는 것과 반대되는 쪽으로 스스로 이끌어야 한다. 사람들이 굽은 목재를 곧게 펴려고 할 때처럼, 자신이 잘못하는 것으로부터 멀리 끌고 가야 중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든 것에서 즐거움을 주는 것과 즐거움을 경계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공평하게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즐거움에 대해 트로이아 원로들이 헬레네에 대해 취했던 것과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하고, 만사에 그들의 음성을 되새겨야 한다. 그렇게 즐거움을 보내버릴 때 잘못하는 것이 줄어든다. 

97

106

113

114

117

118

120

134

157

174

180

181

185

186

188

194

(반만 읽고 표시해두었던 부분은 페이지수만...여러 번역본을 비교해 보아야 할까...어렵다...!)

'후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리스토텔레스x조대호 (아르테, 2019)  (1) 2023.06.29
유리 젠가 / 이수현  (0) 2022.03.10
침입자들 / 정혁용  (0) 2022.03.10
고래 / 천명관  (0) 2021.12.22
나목 / 박완서  (0) 2021.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