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고 갑갑하다. 터널 속, 아니 터널은 출구가 있으니 동굴 속에 있는 것만 같다. 어디선가 햇볕이 한 줌 들어오기는 하는거 같은데, 바람도 약간 부는 것 같기도 한데 그 방향이 어딘지는 모르겠고 밖은 깜깜한 밤인 것 같다. 밖이 보이기라도 하면 환한 달이나 반짝반짝한 보석같은 별이라도 올려다 볼 수 있을텐데, 그럴만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대로 대학을 갔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선 취업 대신 어학연수를 갔다. 망설임이 없었다. 나중에 회사를 다니게 되면 이렇게 고민없이 해외로 훌쩍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짐을 쌌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하고 싶었던 여행도 실컷 하고 해외에서 취업도 했다. 역시나 취업 후 현실이 녹록치 않았다. 다시 한국에 들어온 후 또 다시 해외에서 기회를 얻고 싶은데 정신과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풀어야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니 여전히 너무 많다. 풀리기나 하는 건지, 어쩌면 풀리길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라는데 나는 내일 죽어도 상관없을 것만 같다. 앞에 이 문장을 쓰면서 마음 속으로 비난의 세례를 퍼붓는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할머니의 비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비난... 나한테 직접 누가 얘기한 것도 아닌데 나는 이미 나에게 평가의 말을 해버린다. 그렇게 말 하는건 나쁜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지. 이게 바람직한 방향이지.
사는 데 정답은 없다는데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모습, 태도, 가치관, 상황이 정해져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리 스스로 당당해도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몸이 힘든 배달일은 남들에게 궁금한 일이 아니고 힘들게 공부하고 학위를 따야만 직업을 구할 수 있는 연구직은 대단한 일이다. 남들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을거라고 되뇌어보아도 남들이 평가하는 상황에 놓이면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생각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에겐 격리와 시간이라고 했고,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이유가 아닐까. 상담치료를 왜 받고 있는지, 배달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따로 나와 살 공간을 마련하지 않고 돈을 모으는 이유가 무엇인지, 일주일의 하루이틀만 엄마와 얘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하는 행동 모든 것에 이유를 달아야만, 스스로에게 납득이 가야만 버틸 수 있다. 그렇다면 버텨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 나은 삶을 위해서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
그런데 현재 나의 마음상태로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오더라도 그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으며 계속해서 버틸 것 같다. 그래서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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