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경험과 삶

대상관계이론 1

lunadelanoche 2021. 2. 8. 19:21

뭘 하고 싶은데?
나는 외국에 나가고 싶어
외국 좋지. 코로나만 끝나면 어디든 가자.
('가'가 아니고 가자? 나 혼자 갈건데)
스페인어 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 포르투갈도 한번 다시 가보고 싶긴 해.
근데 언어를 모르면 너무 피상적으로밖에 알지 못 한다는게 아쉽지.
그래서 엄마가 파리갔을 때 몽셸미셸 하루짜리 투어 했었잖아. 뒤에 앉아있던 남자애들이 야 이거 괜찮다면서 얼마나 좋아했었다구. 그때 그 가이드 참 야무지게 잘했어.
(나도 외국 나가서 저렇게 가이드 하면서 살고 싶다)
근데 지금은 뭐 코로나땜에 올스톱이지.

너 지금 조급해지는거야? 우리 조급해지지 말자.
조급해지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는 과정이야.
생각해보면 엄마는 너 고등학교 1학년부터 입시 준비해야된다고 해서 너무 당황했었어. 뭐부터 해야 할지, 정보도 너무 많고. 근데 내가 뭔가를 제시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었어. 딸 이거 한번 해보는거 어때? 이렇게 제시하는거. 그래서 너 수능 점수 나왔을 때도 싫다는거 질질 끌고 가서 코엑스에서 입시상담하는데 30만원내고 한거 아니야. 그러다가 대학에 붙었고 다니겠다고 해서 다니는데 정말 너 혼자서도 너무 잘 하고 재밌게 다니는거야. 그래서 난 널 독립시켰다고 생각했지. 아 이젠 내가 뭘 하라고 제시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내가 제시하지 않아도 되는 그 상황이야말로 심리적으로 독립시킨 상황이라고 생각한거지.
근데 나는 독립했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어. 외국 나가선 애초에 물리적으로 혼자니까 내가 선택해야했고 내가 결정해야했고 그건 당연했던거지. (여기서 생각해보니 나에겐 이 과정이 꼭 필요했다. 그전까진 단 한번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지지 않았었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다. 때때로 가뭄에 콩나듯 수강신청을 하는 등의 자율적으로 고르는 상황이 오는 걸 즐겼다. 큰 해방감이었고 '내'가 내 '스스로' 무언가를 '하나부터 열까지' 선택하고 실행하고 책임지는 것이 중요했다. 이 모든걸 외국에서 한거다.)

상담사는 '대상관계이론'에 푹 빠졌다고 했다. 당신도 엄마와의 관계에 있어서 생각해봐야할 점이 아주 많았기에 프로이트를 공부하고서 접한 대상관계이론에 엄청난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게다가 여성분석가이기에 남성의 시선과는 또 다르다고 했다. 나는 아직 대상관계이론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냥 느낌으로 나와 대상의 관계가 나에게 너무나도 밀접하고 무지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인데 이 대상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만나는 바로 그 사람 - 대부분 엄마 그런데 엄마라는 그 사람만 얘기하는게 아니라 대상과 접촉하면서 생기는 모든 상황들, 관계 속 에너지, 흐름, 역동, 갖가지 곁다리들까지 내 인생 전반에 걸쳐 삶 깊숙히 박혀있는 것이다. 하나하나 살펴봐야한다.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요리로 뜯어보고 저리로 뜯어보고 그게 바로 '나'를 알아가는 길이고 '나'와 함께 손 잡고 갈 수 있는 길이고 '나'를 '나' 그대로 봐 주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