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던 영화였다. 단순히 나도 주인공처럼 여기저기 거처를 옮겨 다니면서 여기선 이 일을 했다가 저기 가선 저 일을 하며 떠돌아 다녀야겠다고 다짐한줄로만 알았다. 오랜만에 본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 는 그보다도 더 깊숙한, 의식의 표면 위로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던 내 속의 그 무언가를 건들였다.
"자아를 찾기 위한 여행인가요?"
"아니요, 오히려 찾고 싶지 않아요. 아무리 해도... 내가 한 행동에 따라 살 수 밖에 없으니까요. 찾지 않아도, 아무리 싫어도 여기 있으니까요. 도망치는 거에요."
"뭔가에 쫓기고 있어요?"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어디를 가도 겉돌기만 해서 차라리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한 적 없어요? ... 그래서 낯선 곳으로 갔죠."
아무리 해도 내가 한 행동에 따라 살 수 밖에 없다는 말에 꽂혔던 것 같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는 흥분했었다. 여기라면 즐거운 일만 있겠지, 불편한 일 따윈 없을거야.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한국에서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내 눈 앞에서 없애버리면 나아질 줄 알았다.
'타쿠야, 나는 내가 훨씬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가족도, 연인도 오래 함께 있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은 안 하는 것이라고 늘 생각했어. 얌전하게, 적당히 웃다보면 문제없이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어느 사이엔가 아무 말도 못하는 관계가 되는 건 불행한 일이야 ...'
싫은 소리 못한다고 나를 구박하진 말자. 아직 직면할 준비가 안된 내가 쓰는 또 다른 방어막 중 하나이니까. 그저 그 싫은 소리를 하면 어떻게 될지, 무엇이 두려운지 알고만 있어도 마음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진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7128
백만엔걸 스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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