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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연극 ‘레드’가 아닌 ‘빨강’을 기대하며 / 김윤철
김윤철서울대 영어영문학과 석사과정 올초 예술의 전당에 오른 연극 는 잊지 못할 경험을 안겼다. 추상표현주의 거장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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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라는 번역어가 걸렸다. 통상 외래어는 기술적, 전문적, 개념적인 함축을, 고유어는 감각적, 정서적, 직관적인 함축을 지닌다. 그래서 우리는 '레드'를 패션, 디자인계 등에서 쓰며, 얼굴이 '레드해졌다'하지 않고 '빨개졌다'한다. 그런데 극에서 레드라는 영단어는 후자의 영역을 지칭한다 ... 이같이 외국 작품의 제목을 영어 발음대로 적어 번역하는 경우가 늘며 문제도 함께 늘고 있다. 영화계가 그 선봉에 있고, 출판계에서도 같은 방식이 유행이다. 사정은 있다. 영어는 세계 각국에서 모국어의 일부처럼 쓰인 지 오래며, 영어의 세련된 이미지는 흥행을 돕는다. 그러나 음차 번역이 표준이 된 것은 문제적이다. 먼저 무리한 음차는 제목이 제 기능을 잃게 한다. <소리 위 미스드 유> <오 머시!> <포트레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 이런 난삽한 제목은 작품 표시와 소개라는 제목의 기본 임무조차 하지 못한다. 또한 영어 중심의 엉성한 음차 관행은 정체불명의 돌연변이를 양산하고 있다. <로마 위드 러브>는 영어 음차인데 '로마'는 한국식 표기다. 프랑스 영화를 <120 비츠 퍼미닛>이라고 옮긴 경우는 반달리즘*에 가깝다.
이처럼 최소한의 원칙이 결여된 영어 중심 번역은 문화적 대기를 흐리는 공해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번역을 게으르게 하면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문화의 폭이 줄어든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죄와 벌>, <무기여 잘 있거라> 등 잘된 번역은 우리 언어와 사고를 확장시킨다. '에트랑제'나 '스트레인저'가 아니라 <이방인>이라는 번역이 있기에 우리는 이제 같은 한국어 단어를 볼 때 더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다.
나아가 번역 작업은 우리와 타문화에 대한 이해를 공히 깊게 해주며, 이런 과정은 귀중한 문화적 유산이 되어 돌아온다. 유럽에는 책 한 권이 수세기에 걸쳐 재번역되며 사상적, 문학적, 역사적 양분이 된 경우가 허다하다. 일본 근대화에 번역이 큰 몫을 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은 이런 유산이 적다. 번역가 이희재가 <번역의 탄생>에서 지적하듯 우리는 한동안 중역을 했고, 이후에도 의역 대신 경직된 직역을 고수해 한국어를 지키고 넓히는 데 모두 서툴러졌다. 그래서 음차 번역의 유행은 더 우려스럽다. 물론 음차가 적절할 때가 있다. 그러나 아무 고민 없이 음차를 택하는 습관은 작품 이해를 제한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표현력과 사유마저 감퇴시킨다. 까탈스러워 보여도 우리는 번역에 더 집착할 필요가 있다. (위 기사에서 발췌)
(*반달리즘: 공공의 재산이나 사유 재산을 고의적으로 파괴하거나 해를 끼치는 행위이다.[1] 문화·예술 및 공공 시설을 파괴하는 행위 또는 그러한 경향을 말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5세기 초 유럽의 민족 대이동 때 아프리카에 왕국을 세운 반달족이 지중해 연안에서 로마에 이르는 지역까지 약탈과 파괴를 거듭한 민족이라고 잘못 알려진 데에서 유래된 프랑스 말이다. 반달리즘이라는 말 자체가 반달족이 당하고 있는 반달리즘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반달족이 이동하던 때 그 지도자(또는 주요 부족)는 이미 로마 문화를 받아들여 로마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하였고, 그런 까닭에 파괴 행위는 극히 일부였으며,[2] 오히려 로마의 문화와 예술은 로마 제국 말기의 노예나 빈곤층 그리고 후대의 예술가와 로마의 보통사람이 더 많이 파괴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기에 고대 그리스 양식을 흉내 내려고 한다면 가장 쉬운 방법이 로마시에 있던 오래된 건축물에서 기둥 등을 가져다가 약간 손을 보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로마”를 만들기 위해 “옛 로마”를 파괴한 이는 로마인 자신이었다. 물론 일부 예술가(예를 들면 미켈란젤로)는 그러한 행위를 비난했지만, 대부분 무시를 당했다. 즉 반달리즘의 어원이 된 반달족은 오히려 반달리즘의 피해자에 가깝다. 이와 같이 반달리즘을 내포한 낱말에는 고딕 예술의 어원이 된 고딕(Gothic)이 있다. 이는 “고트족의” 또는 “고트풍의”라는 뜻으로, 교양 없고 야만스럽고 풍류도 없으며 촌스럽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곧 고트족이 그러했다는 경멸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반달족과 마찬가지로 고트족도 로마 문화와 예술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문화와 로마 문화의 융화를 꾀한 민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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