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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없어져야 하는 이유 (박노자/한겨레)

lunadelanoche 2020. 9. 9. 16:31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7374.html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서울대가 없어져야 하는 이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입학 관련 의혹으로 정국이 시끄럽다. ‘명문대’ 입학 그 자체야 법률적 의미에서 ‘불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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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권에서는 지금 사회적 불만, 나아가서 급진화의 중심에 신자유주의의 몰락이 가시화된 2009년 이후에 사회에 진출하는 '밀레니얼'들이 서 있다. 그들은 근현대 역사상 부모보다 훨씬 더 어렵게 살아야 할 최초의 '박탈당한 세대'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육체노동자들의 평균 실질임금이야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지만, 그나마 고학력 피고용자들의 실질임금은 2008년 이전까지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실질임금의 인상이 벽에 부딪힌 상황에서 부동산 투기에 들어가는 엄청난 규모의 잉여 자금으로 인해 주거비용만 계속해서 오를 뿐이다. 거기에다가 대학교육 비용들도 지속적으로 늘어나 이미 학자금 융자로 인해 채무자가 된 채로 졸업을 해야 하는 밀레니얼들은 주택 구매 융자(모기지론)까지 받아 상환할 능력이 대개는 결여되어 있다. 밀레니얼들의 궁핍이 급진화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한국의 밀레니얼이라고 할 10대 후반과 20대들은 정치적으로는 평균보다 약간 '왼쪽'에 서 있긴 하다. 지난 대선 때에 20대 유권자들의 12.7%나 주요 후보 중에서 가장 좌파적이라고 할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했는데, 이는 격랑의 80년대를 겪은 50대들의 투표율(4.5%)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한데 구미권과 비교하자면 한국의 밀레니얼들은 여전히 '온건'하고 비정치적이다. 심상정은 미국의 버니 샌더스나 영국의 제러미 코빈처럼 비교적 급진성이 높은 '민주적 사회주의' 담론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지만, 샌더스나 코빈처럼 상당수 밀레니얼들의 정치적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정치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에는 한국의 밀레니얼들은 살인적 학습 노동과 생업으로 너무 바쁘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저항에 나선다기보다는 '3포세대''5포세대'와 같은 자조섞인 자칭들을 통해 그 좌절감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구미권 청년들보다 덜 급진적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에서는 아직도 생존 메커니즘으로서의 '가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노르웨이에서는 이르면 성년이 되는 18살부터, 아니면 대학 입학 시점부터는 청년이 부모와 분가하면서 더 이상 부모세대의 재정적 지원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는 그 반대로 자녀에게 직장과 아파트가 생길 때까지 그 자녀는 부모에게는 '챙겨야 할 아이'다. '가정'의 존재는 한국 밀레니얼들의 불안감을 덜어주고 그 급진화를 더디게 만드는 동시에 부모 세대에게 자녀의 입학, 취업 등 진로 문제에 매우 뜨거운 관심을 갖게끔 만든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고 잠도 덜 자고 휴식도 거의 취하지 못하는 한국인 기성세대의 유일한 위안은 무엇인가? 맞다. 그나마 내 아이라도 대학을 잘 나와서 이런 고생을 면할 수 있도록 내가 좀 고생해야지"와 같은 생각이다. 문제는, 조국 서울대 교수 딸의 사회 진입 궤도를 더 이상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기 위안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상사의 폭언을 들어가면서 직장에서 과로사한다 해도 그들의 자녀가 고등학교 시절에 학술논문의 제1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이 너무나 잘 아는 것이다. 그들의 좌절감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 학력을 부모의 힘으로 얻는 '2세 사회 귀족'들이 부모의 사회적 지분을 그대로 세습하는 광경을,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다수의 한국인들이 계속 봐야 하는 한, 이 사회에서는 최소한의 사회적 신뢰 구축도 불가능할 것이다. 자녀의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도 박탈당한 현대판 평민들의 분노, 좌절, 절망 속에서 무슨 '진보 개혁'이 가능하겠는가? (위 기사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