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나는 몇 시간 동안이나 눈을 뜬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후에도 나는 많은 재난을 겪었지만, 가장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보다도 그때가 훨씬 기분이 나빴다. 마침내 나는 겉잠이 들어 괴로운 악몽 속으로 빠져든 게 분명하다. 천천히 악몽에서 깨어난 나는 - 아직도 반쯤은 꿈에 잠긴 채 - 눈을 떴다.
63 하지만 실컷 웃는 일은 아주 좋은 일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보기 드물게 좋은 일이다. 그래서 더욱 유감이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자신을 유쾌한 웃음거리로 제공한다면, 그 사람이 부끄러워서 꽁무니를 빼지 않고 기꺼이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고 남의 웃음거리가 되게 해주어라. 자신에 대해 실컷 웃을 거리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들어 있을 게 분명하다.
72 우리가 영적인 것을 바라봄에 있어서 그것은 마치 굴조개가 바다 밑에서 태양을 바라보며 흐린 물을 가장 맑은 공기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을지도 몰라. 내 몸뚱이는 더 나은 내 존재의 찌꺼기일 뿐인지도 몰라.
92 '더욱 아늑하게'란 말을 쓴 것은, 몸의 따뜻함을 즐기려면 몸의 일부가 추워야 하기 때문이고, 이 세상의 모든 특성은 비교에 의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면에서 편안하다고, 오랫동안 그래왔다고 으스대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편안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93 퀴퀘그는 서쪽과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섬 코코보코에서 태어났다. 그 섬은 어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다. 좋은 고장은 결코 지도에 나오지 않는 법이다.
99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나면,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112 고립된 낸터컷 섬의 퀘이커교도인 이 늙은 선원의 말 속에는 반쯤 농담이 섞여 있지만, 그 가면 속은 섬사람 특유의 편협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고, 코드 곶이나 비니어드 출신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115 이를테면 먼 바다에 나가 북반구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별자리 아래에서 오랫동안 수없이 불침번을 서면서 적막과 고독을 겪은 덕분에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색할 수 있었던 사람, 그리하여 자연이 자발적으로 내맡기는 순결한 젖가슴에서 갓 나온 달콤하거나 야만적인 자연의 느낌을 모두 받아들이고, 게다가 우연한 모험의 도움도 조금 받아서 대담하고 간결하며 고상한 언어를 배울 수 있었던 사람 - 이런 사람은 한 나라의 전체 인구 가운데 한 사람 있을까 말까 하지만 - 안에서 지구 같은 두뇌 및 무거운 가슴과 결합할 때, 숭고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에 알맞은 강력하고 화려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극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런 인물은 선천적이든 다른 상황 탓이든 간에 그 성격의 근저에 거의 의도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압도적인 우울함이 숨어 있지만, 그것도 그 인물의 가치를 조금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비극적으로 위대한 인물은 병적인 우울함을 통해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야망을 품은 젊은이들이여, 명심하라. 인간의 위대함이란 질병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167 검둥이 꼬마 핍!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가엾은 앨라배마 소년! '피쿼드'호의 음산한 앞갑판 위에서 여러분은 머지않아 탬버린을 치는 그 소년을 보게 될 것이다. 영원한 시간을 예시하듯, 그는 천상의 뒷갑판에 불려 나와 천사들과 함께 연주를 시작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영광 속에서 탬버린을 쳤다. 그는 이 세상에서는 겁쟁이로 불렸지만, 저 세상에서는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172 며칠이 지났다. 얼음과 빙산을 모두 뒤로하면서 '피쿼드'호는 이제 1년 내내 8월이 계속되는 열대 해역의 문지방으로 들어가, 그곳을 영원히 지배하고 있는 키토의 화창한 봄빛 속을 달리고 있었다. 따뜻하면서 시원하고, 맑고, 온갖 소리가 울려 퍼지고, 향기롭고, 넘칠 듯이 풍족한 낮 시간은 마치 장미 향수를 뿌린 눈으로 만든 페르시아 빙과를 수북이 담은 수정 그릇같았다. 별이 빛나는 장엄한 밤은 보석으로 장식한 벨벳 옷을 걸치고, 집에 홀로 남아, 자긍심 속에서, 정복하러 떠난 백작들, 황금빛 투구를 쓴 태양들의 기억을 끌어안고 있는 도도한 귀부인들 같았다. 낮은 그렇게 매력적이고 밤은 그렇게 유혹적이어서, 잠을 언제 자는 게 좋을지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시들지 않는 날씨의 모든 매력는 바깥 세상에 새로운 매력과 효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영혼에도 작용했고, 특히 고요하고 온화한 저녁 무렵이면, 맑은 얼음이 대부분 조용한 황혼녘에 형성되듯 기억은 수정처럼 맑은 결정체를 쏟아냈다. 그리고 이 모든 미묘한 감응력은 에이해브의 심신에 점점 더 강하게 작용했다.
노인들은 대체로 잠이 오지 않는 법이다. 삶과 더 오래 연결되어 있을수록 인간은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그 무엇과도 관계를 덜 갖게 된다.
175 아침에 선실에 들어가서 보면, 그물침대는 온통 구겨져 있고, 시트는 발치에 몰려 있고, 이불은 새끼줄처럼 꼬여 있고, 베개는 구운 벽돌을 올려놓기라도 한 것처럼 뜨거워져 있다고 말이야. 불같은 뜨거운 노인네! 선장은 육지 사람들이 양심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지고 있나 본데, 양심이란 신경통 같은 것으로, 충치보다 더 아프대. 글쎄,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걸리지 않도록 바랄 수밖에.
(...) 잠이나 자러 가자. 빌어먹을. 곧바로 잠에 곯아떨어질 수 있는 것만 해도 이 세상에 테어난 보람이 있어. 생각해보니 갓난아기들이 맨 먼저 하는 것도 잠자는 일이니, 그것도 역시 이상한 일이야. 빌어먹을. 하지만 생각해보면 만사가 다 이상해. 하지만 생각하는 건 내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야. 생각하지 말라. 이것이 내 열한 번째 계명이지. 잘 수 있을 때 자라는 건 내 열두 번째 계명이고. 이런, 또 생각하고 있군. 그런데 뭐라고? 나를 개새끼라고 불렀잖아.
260 이런 곳들은 모두 그가 이따금 들르는 바다의 여인숙일 뿐, 오래 거주하는 곳은 아닌듯하다.
261 여기까지 생각하면 그의 미친 마음은 숨 가쁜 경주라도 벌이는 것처럼 달리곤 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골똘한 생각으로 말미암은 피로와 현기증이 그를 덮쳤다.
274 고래잡이에는 불손한 짓을 한다는 기묘한 느낌이 자연히 수반되지만, 현재로서는 그 이상하고 공상적인 불손함을 어떻게든 없애야 한다는 것, 이 항해의 무서운 전모는 눈에 띄지 않는 배경 속에 감추어두어야 한다는 것(오랫동안 행동하지 않고 명상에만 잠겨 있어도 용기를 잃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으므로), 간부선원이나 평선원들이 오랫동안 야간 당직을 설 때는 모비 딕 이외에 무언가 생각할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에이해브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예견했다. 그가 모비 딕을 추적하는 것이 이번 항해의 목적이라고 발표했을 때 야만적인 선원들이 아무리 열광적이고 성급하게 환성을 질렀다 해도, 뱃사람이란 종류에 관계없이 모두 변덕스럽고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 살면서 날씨의 변덕을 들이마신다. 따라서 멀리 떨어져 있고 무익한 대상을 계속 추적할 때는 그 목적이 아무리 생명과 열정을 약속한다 해도 그때그때 흥미를 느끼고 몰두할 수 있는 일감을 그들에게 제공하여 최후의 돌진에 임할 수 있는 힘을 유지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다.
276 이것은 '시간을 짜는 베틀'이고, 나 자신은 운명의 실을 기계적으로 짜고 있는 북처럼 여겨졌다. 여기에는 고정된 날실이 있어 단조롭게 왔다 갔다 하는 변함없는 움직임만 반복할 뿐이었고, 그나마도 씨줄과 얽히는 것을 허용할 정도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날실은 필연으로 여겨졌다.
291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이 기묘하고도 복잡한 사태에는 우주 전체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난이나 농담으로 여겨지는 야릇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어떤 인간은 그 농담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 농담이 다름 아닌 자신을 웃음거리고 삼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한다. 그래도 그는 전혀 의기소침하지 않고, 논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는 모든 사건, 모든 신조와 믿음과 신념, 눈으로 볼 수 있거나 볼 수 없는 온갖 어려운 일들이 아무리 울퉁불퉁한 혹투성이라도 상관하지 않고 꿀꺽 삼켜버리는 것과 같다. 강력한 소화 능력을 가진 타조가 총알과 부싯돌을 통째로 삼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사소한 고생과 걱정, 돌발적인 재난의 예상, 목숨이나 팔다리를 잃을 위험만이 아니라 죽음 자체도 그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한 익살꾼에게 장난스럽게 얻어맞았거나 옆구리를 기분 좋게 쥐어박힌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 있는 그 기묘한 변덕은 사람이 극도의 시련을 겪고 있는 순간에만 찾아온다. 그 사람이 가장 진지한 순간에만 찾아오기 때문에, 조금 전만 하더라도 가장 중대한 일처럼 여겨지던 것이 지금은 통상적인 농담의 일부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 자유롭고 편안한 악당 철학을 낳기에 가장 알맞은 것은 바로 고래잡이의 위험이다. 따라서 나도 그 철학을 가지고 '피쿼드'호의 항해 전체와 그 목표인 거대한 흰 고래를 지켜보았다.
293 "퀴퀘그!" 나는 그를 불렀다. "같이 가세. 내 변호사 겸 유언 집행인 겸 유산 상속인이 되어주게."
하필이면 뱃사람이 마지막 유서나 유언을 어설프게 주물럭거리는 것이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뱃사람만큼 그것을 기분전환으로 즐기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내가 선원 생활을 시작한 이래 이것과 똑같은 일을 한 것은 이번에 네 번째였다. 이번에도 그 의식이 끝나자 나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가슴에 얹혀 있던 돌멩이가 굴러 나간 듯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내가 살 나날은 나사로가 부활한 뒤 살았던 나날만큼이나 즐거울 것이다. 앞으로 몇 달이나 몇 주를 항해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 나날들은 완전히 덤으로 얻은 나날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살아남은 셈이다. 나의 죽음과 매장은 내 가슴속에 깊이 간직되었다. 나는 마음에 거리끼는 데가 전혀 없이 아늑한 가족 납골당 안에 앉아 있는 조용한 유령처럼 평온하고 만족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296 따뜻한 곳에 사는 개화된 문명인에게 그는 꿈속에서, 그것도 희미한 꿈속에서밖에 볼 수 없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인간은 변화하지 않는 아시아 사회, 특히 아시아 대륙 동쪽에 있는 섬들에서는 이따금 출몰하고 있었다. 태곳적부터 변하지 않는 이 격리된 섬나라들은 오늘날에도 지구에 태어난 첫 세대의 희미한 원시성을 아직도 대부분 보존하고 있다. 최초의 인간을 뚜렷이 기억하는 그 첫 세대는 모든 인간의 조상이며,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 채 서로를 유령처럼 노려보았고,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왜 창조되었는지를 해와 달에게 물었다.
337 제56장 가장 오류가 적은 고래 그림과 정확한 고래잡이 장면 그림들 (Of the less erroneous pictures of whales)
Of the Less Erroneous Pictures of Whales - byGosh.com
In connexion with the monstrous pictures of whales, I am strongly tempted here to enter upon those still more monstrous stories of them which are to be found in certain books, both ancient and modern, especially in Pliny, Purchas, Hackluyt,…Read more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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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 또, 폭풍이 오기 전에 그것을 예고하는 깊은 정적이 폭풍 자체보다 더 무섭다고 한다. (...) 인간은 누구나 포경 밧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들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 여러분이 철학자라면, 포경 보트에 앉아 있어도 작살이 아니라 부지깽이를 옆에 놓고 난롯가에 앉아 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공포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407 머리의 훨씬 뒤쪽과 입의 귀퉁이 부근을 자세히 보면 속눈썹이 없는 어린 망아지의 눈과 비슷한 눈을 찾을 수 있다. 거대한 머리와는 전혀 균형이 맞지 않는 작은 눈이다.
그런데 고래의 눈은 이처럼 옆에 붙어 있기 때문에, 바로 뒤에 있는 물체를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앞에 있는 물체도 볼 수 없을 것은 분명하다. 요컨대 고래의 눈은 사람의 귀가 달려 있는 부위에 있다. 귀를 통해 옆으로 비스듬히 물체를 보면 어떻게 될지, 스스로 상상해보라. 옆으로 직선을 그으면 거기에서 앞뒤로 30도 정도의 범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여러분의 철천지원수가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올 때와 마찬가지로, 훤한 대낮에 비수를 들고 바로 앞에서 다가와도 그를 볼 수 없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여러분은 등을 두 개 갖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앞면도 두 개를 갖게 된다는 뜻이다. 인간의 앞면은 눈이 있어야만 비로소 앞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생각해낼 수 있는 다른 동물들의 눈은, 양쪽 눈이 아무런 자각 없이 두 개의 시력을 합쳐, 둘이 아니라 하나의 영상을 뇌에 만들어내도록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고래의 눈은 기묘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몇 입방미터나 되는 크고 단단한 머리가 두 눈을 완전히 갈라놓고 있다. 마치 골짜기의 호수 사이에 높은 산이 솟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립되어 있는 각각의 눈이 제공하는 영상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래는 이쪽 눈으로는 이쪽 경치를 또렷이 보고, 저쪽 눈으로는 또 다른 경치를 또렷이 볼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쪽과 저쪽의 중간은 완전한 암흑이며, 고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실 인간은 두 개의 창틀이 합쳐져 하나의 창을 이룬 초소에서 세상을 내다본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고래의 경우에는 이 두 개의 창틀이 따로 분리되어 별개의 창 두 개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고래의 시각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다.
409 하지만 고래의 눈이 허셜의 망원경 렌즈만큼 크고 귀가 성당 입구만큼 넓다면 고래는 더 멀리까지 볼 수 있고 고래의 청각은 더 예민해질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을 넓히려고 애쓰는가? 그보다는 마음을 예민하고 섬세하게 하는 데 노력하라.
452 생각해보라. 고래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무슨 말이든 더듬거려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생각이 깊은 존재치고 이 세상에 할말이 있는 경우는 내가 알기로는 거의 없다. 오, 세상은 무슨 말이든 잘 들어준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455 지상의 온갖 것에 대한 의심, 천상의 무언가에 대한 직관, 이 두 가지를 겸비한 사람은 신자도 불신자도 되지 않고, 양쪽을 공평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
500 "핍, 보트에 달라붙어.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네가 바다에 뛰어들더라도 나는 절대로 건져주지 않을 거야. 너 같은 놈때문에 고래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 네가 앨라배마에서 팔릴 값보다 고래 한 마리가 서른 배나 더 비싸게 팔린단 말이다. 그걸 명심해서 앞으로는 절대로 물에 뛰어들지 마." 여기서 스터브가 간접적으로 암시한 것은 인간이 동료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인간은 돈을 버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 성향이 자비심을 방해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512 인공적인 불을 믿지 말라. 내일, 자연의 햇빛 속에서 보면 하늘은 밝을 것이다. (...)
그런데도 태양은 버지니아의 대습지도, 로마의 저주받은 황야도, 광막한 사하라 사막도, 달빛 아래에 있는 수백만 마일의 사막과 비애도 감추지 않는다. 태양은 지구의 암흑면이며 지표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바다도 감추지 않는다. 따라서 내면에 슬픔보다 기쁨을 더 많이 가진 인간은 진실할 수 없다. 진실하지 않거나 아직 인간이 다 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다. (...) '모든 것이 헛되다.' 이 완고한 세계는 그리스도가 출현하기 이전인 솔로몬의 지혜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병원과 감옥을 살짝 피하고, 묘지는 재빠른 걸음으로 가로지르고, 지옥보다는 오페라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은 쿠퍼나 영이나 파스칼이나 루소를 모두 불쌍한 병자라고 부르고, 라블레는 지극히 현명하기 때문에 명랑하다고 단언하면서 태평한 인생을 보낸다. 그 사람은 묘석 위에 앉아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위대한 솔로몬과 함께 축축한 초롯빛 이끼를 뜯을 자격도 없다.
하지만 솔로몬도 말하고 있다. "깨달음의 길을 떠나 헤매는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죽은 자들 속에 있으리." 그러므로 여러분은 한때 내가 그랬듯 불빛에 자신을 내맡겨 불이 당신을 거꾸로 돌려놓거나 무감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비애인 지혜도 있지만, 광기인 비애도 있다. 어떤 영혼 속에는 캐츠킬의 독수리가 한 마리 살고 있는데, 이 독수리는 캄캄한 골짜기로 급강하할 수도 있고, 그곳에서 다시 하늘 높이 솟아올라 햇빛 찬란한 창공으로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독수리가 영원히 깊은 골짜기 안에서만 날아다니더라도, 그 골짜기는 산속에 있다. 그래서 독수리가 아무리 낮게 급강하해도, 산속의 독수리는 평야에 사는 다른 새들이 높이 솟아오를 때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584 기세가 약해진 태양 아래에서 온종일 유유히 넘실거리는 물결 위를 떠돌 때, 자작나무로 만든 통나무배처럼 가벼운 보트에 앉아 난롯가의 고양이처럼 뱃전에서 가르릉거리는 파도와 사교적으로 어울릴 때, 해수면의 잔잔한 아름다움과 반짝거림을 바라보며 그 밑에서 두근거리는 호랑이의 심장을 잊고 벨벳처럼 부드러운 앞발이 무자비한 발톱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일부러 기억하지 않으려 할 때, 그런 시간들은 꿈결처럼 평온하다.
포경 보트에 탄 방랑자가 바다에 대해 자식이 어버이에게 품는 것과 같은 신뢰감을 느끼며 바다를 꽃으로 뒤덮인 대지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런 때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돛대 끝만 보이는 배는 높은 물결이 놀치는 거친 바다가 아니라 길게 자란 풀이 물결치는 초원을 헤치며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서부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말이 놀랄 만큼 푸른 초원을 헤치며 나아갈 때 몸뚱이는 우거진 풀에 가려지고 뾰족 솟은 두 귀만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585 하지만 뒤섞이고 뒤엉킨 삶의 실오라기는 날줄과 씨줄로 엮이고, 평온한 날씨는 반드시 폭풍과 교차한다. 우리의 삶에도 온 길로 뒤돌아가지 않는 한결같은 전진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정해진 단계를 거쳐 나아가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멈추는 것도 아니다. 즉 유년기의 무의식적인 도취, 소년 시절의 맹신, 청춘 시절의 의심(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운명), 이어서 회의, 그다음에는 불신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만약에'를 심사숙고하는 성년기의 평정 단계에서 정지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그 단계를 다 거치고 나면 우리는 다시 첫 단계로 돌아가서 유아기와 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되어 '만약에'를 영원히 되풀이하는 것이다. 우리가 더이상 닻을 올리지 않을 마지막 항구는 어디에 있는가? 아무리 지친 사람도 싫증내지 않을 세계는 어떤 황홀한 창공을 항해하고 있는가? 버려진 아이의 아버지는 어디에 숨어 있는가? 우리의 영혼은 아이를 낳다가 숨진 미혼모가 남긴 고아와도 같다. 아버지가 누구인가 하는 비밀은 어머니의 무덤 속에 있으니, 그것을 알려면 무덤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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