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책 44

노멀 피플 / 샐리 루니

21 메리앤은 자신의 진짜 삶이 어딘가 아주 먼 곳에서 그녀를 빼놓고 이뤄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곳이 어디인지 찾아내서 그 일부가 될 수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학교에 있을 때면 그런 기분을 종종 느끼곤 했지만, 그 진짜 삶이라는 것이 어떤 장면이나 감각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동반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런 기분이 들기 시작하면, 그 삶이 어떤 것일지 더 이상 상상할 필요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66 그 말은 진실이었을까? 그것을 판단하기에 그는 확신이 부족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그렇게 말했으니 분명히 진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왜 거짓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순간, 자신이 가끔 무계획적으로 혹은 까닭도 모른 채,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74 그..

후기/책 2020.10.06

스토너 / 존 윌리엄스 (Stoner by John Williams)

16 스토너는 농장에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창문 하나 없는 자신의 다락방에서 흐릿한 램프 불빛에 눈을 깜박이며 공부를 할 때 자기도 모르게 슬론 교수의 모습을 자주 떠올렸다. Away from the classroom, doing his chores about the farm or blinking against the dim lamplight as he studied in his windowless attic room, Stoner was often aware that the image of this man had risen up before the eye of his mind. 다른 강사들의 얼굴이나 같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구체적인 특징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He had difficulty summ..

후기/책 2020.10.06

걷기의 인문학 / 리베카 솔닛

• P21 장소를 넘나들다 보면, 시간을 넘나드는 일이 더 쉬워지는 것 같다. 계획에서 추억으로 넘어가고, 거기서 또 관찰로 넘어가고. • 보행의 리듬은 생각의 리듬을 낳는다. 풍경 속을 지나가는 일은 생각 속을 지나가는 일의 메아리이면서 자극제이다. 마음의 보행과 두 발의 보행이 묘하게 어우러진다고 할까.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마음이 지나는 풍경의 한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일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는 어딘가를 지나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보행의 역사가 생각의 역사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 보행의 욕구를 만족시키자면 자동차나 배, 비행기의 움직임으로는 부족하다. 몸 자체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마음속에서 일이 일어나려면 몸의 움직임과 눈의 볼거리가 ..

후기/책 2020.09.01

연어 / 안도현

P9 나는 연어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지만, 단 한 줄의 글도 쓸 수가 없었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지식이란 참으로 허망한 것이다. 인간은 물고기를 옆에서 보려고 하지 않고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연어를 위에서 내려다본다는 것, 그것은 연어를 위해서 불행한 일이다. 연어를 위해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눈은 틀림없이 물수리나 불곰의 눈을 닮아 있을 것이다. P11 그러니까 연어를 완전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은, 연어를 옆에서 볼 줄 아는 눈을 갖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알기 쉽게 말한다면, 마음의 눈을 갖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눈,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눈. 상상력은 우리를 이 세상 끝까지 가보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후기/책 2020.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