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개인인가 군중의 일부인가? 우리는 두드러지고 싶은가 눈에 뜨이지 않게 섞이고 싶은가? 어느 쪽이든 뜻대로 하기가 가능하기는 한가? 성별과 무관하게, 우리 각자는 군중 속에서 어떻게 비치기를 바라나? 시선을 끌기를 바라나 시선을 피하기를 바라나? 현저한 존재이기를 바라나 눈에 뜨이지 않고 묻히기를 바라나? 돋보이기를 바라나 무시되기를 바라나?
21 파리의 거리를 걷다 보면 순간 걸음을 멈추게 되는 때가, 심장이 덜컥 멈춘 것 같은 때가 있다. 나 말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도 사방이 존재로 가득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 파리에서 지낸 여섯 달 동안 거리는 집과 목적지 사이의 공간이 아니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되었다. 어디든 흥미로워 보이는 곳이 있으면 그곳으로 갔다. 무너져 내리는 벽, 알록달록 꽃이 핀 창가 화분, 길 저쪽 끝에 있는 무언가 신기한 것(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니고 교차하는 다른 길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에 이끌려갔다. 어떤 것이든, 느닷없이 드러난 아주 사소한 무엇이라도 나를 끌어당겼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는 오늘은 나의 것이고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는 갈 필요가 없음을 되새겼다. 나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웠는데,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제외하고 아무런 야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두 정거장 거리를 가려고 지하철을 탄 적도 있었다. 여기에서 저기까지가 얼마나 가까운지 감도 없고 파리가 얼마나 걷기 좋은 곳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발로 돌아다녀보기 전에는 내가 어느 공간에 있는지, 각 장소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 수 없었다. 어떤 날은 5마일도 넘는 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아픈 발로 룸메이트들에게 들려줄 이야기 한두 개를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뉴욕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았다. 길가에 쭈그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팻말을 들고 돈을 구걸하는 거지들. 아기를 데리고 있는 사람도 있고 개를 데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천막 아래, 계단 아래, 아치 아래에 사는 노숙자들. 파리의 오래된 구석마다 비참한 삶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뉴욕에서처럼 냉담함을 두르고 다닐 수가 없어서 주머니를 뒤져 줄 수 있는 게 있으면 건넸다.
보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눈을 돌릴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36 아녜스 바르다는 1980년대에 Les dites-cariatides 이른바 카르아티드라는 것이라는 제목의 단편 영화를 찍었다 ... 로베르트 무질Roberto Musil이 말했듯이, 기념비의 본질은 눈에 뜨이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눈에 보이라고, 눈길을 끌라고 세운 것이다. 그럼에도 어쩐지 주의를 끌지 못하게 막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도 우리는 어느 정도는 인식한다. 마리나 워너(Marina Warner)의 기념비와 처녀들은 팔레부르봉 광장에 있는 법의 여신상을 치운다면 사람들이 무엇이 사라졌는지는 모르더라도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느끼리라고 말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주변 환경을 예민하게 감지한다.
41 아무 때나 내킬 때 내 걸음을 멈추고 건물에 기대어 수첩에 메모를 하거나 이메일을 읽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게 좋다. 그럴 때면 세상이 멈추기 때문이다. 걷기는 역설적으로 정지를 가능하게 한다.
42 지리학자 이푸 퇀은 움직임을 통해 공간에 의미를 부여할 때, 공간이 파악하고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될 때, 공간이 장소가 된다고 말한다.
49 나는 군중 속에 있을 때, 도시의 소음과 네온 불빛 사이에 있을 때, 아래층에 24시간 영업을 하는 식료품 가게가 있고 길 모퉁이에 맛있는 테이크아웃 음식을 파는 에티오피아 식당이 있는 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집 밖으로 나오면 내가 실제로 세상의 일부엔 것 같고 내가 세상과 주고받을 수 있으며 우리가 모두 같이 이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심리적으로 도시에 있을 때면 교외에 있을 때와 다르게 나 자신을 잘 건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56 안에 들어갔다가 얼른 볼일만 보고 나오게 된다. 그 안에서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수명을 갉아먹는 것 같고 찾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의식하지 못하는 고통을 안겨주는 공간이다. 마르크 오제는 이런 곳을 '비장소(non-places)'라고 부르는데 안타깝게도 이런 곳이 20세기 후반, 그리고 21세기에도 미국의 대표적 공간이다.
우리가 짓는 건물에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이 반영되기도 하지만, 건물에 따라 우리의 모습이 결정되기도 한다.
59 나는 제리코 유료도로로 차를 몰고 가며 가건물 같은 건물들을 보면 화가 난다. 우린 더 나은 것을 누릴 수 있지 않나? 인간은 어디에 데려다 놓든 잘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환경은 중요하다. 환경은 결정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내가 무엇을 하는지를 결정한다. 우리 아버지가 건축계에서 스승으로 생각하는 루이스 칸(Louis Kahn)은 학생들에게 보(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을 건너지르는 나무)처럼 생각하라, 보처럼 느끼라, 무엇이 너를 미는지 무엇이 너를 끌어당기는지 생각하라고 말했다. 그게 건물을 통하는 방식이라고. 이게 내가 도시를 통해 생각하는 방식이다.
75 아무 일도 겪지 않으려면 어떤 것에도 애착을 주지 않아야 할 텐데, 하지만 애착이 없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76 단조의 배경음악이 흐르는 도시 파리야말로 이렇게 자포자기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이곳에는 어떤 고통, 사랑의 상처가 있는데 그런 감정이 거의 기분 좋아질 정도로 확대된다. 파리는 내가 중독적 절망의 기쁨을 처음으로 맛보기에도 이상적인 곳이었다.
리스는 너무 반골이고 '멍해서'(본인의 표현이다) 일자리를 유지하지 못했다.
'후기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토너 / 존 윌리엄스 (김승욱 옮김) (0) | 2020.10.19 |
---|---|
돈키호테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안영옥 옮김) (0) | 2020.10.19 |
노멀 피플 / 샐리 루니 (0) | 2020.10.06 |
스토너 / 존 윌리엄스 (Stoner by John Williams) (0) | 2020.10.06 |
걷기의 인문학 / 리베카 솔닛 (0) | 2020.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