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60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39 상복 입은 여자 하나가 시든 꽃다발을 신문지에 싸 들고 있는 열두어 짜리 소녀를 대동한 채 황량한 거리에 모습을 나타냈던 것이다. 모녀는 자신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무례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검은 양산으로 작열하는 뙤약볕을 가리고 있었다. 죽은 도둑의 어머니와 여동생으로, 무덤에 꽃을 가져가는 중이었다. 그 광경은 마을 사람 모두가 창문을 통해 지나가는 모녀를 바라보는, 하나의 동일한 꿈의 형태로 그 후 여러 해 동안 나를 쫓아다녔는데, 어느 단편에 그 이미지를 풀어 냄으로써 결국 떨쳐 버릴 수 있었다. 49 "문제는, 우리가 얘를 가르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수했는데, 법학 공부를 포기했다는 거예요." 하지만 의사는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충만한 재능에 대한 훌륭한 ..

후기/책 2020.12.01

추천영화 추천드라마

- 멍때리면서 볼 수 있는 신박한 전개 1. 존 말코비치되기 2. 월요일이 사라졌다 3. 레온 (일본영화, 카라 강지영 주연) 4. 싱글라이더 - 야식먹으면서 볼만한, 나쁘지 않은, 약간 즐거운 1. 로마의 휴일 (임창정 주연) 2. 고령화가족 3. 스폰지밥 무비 핑핑이 구출 대작전 (2020) 4. 캐스트 어웨이 - 연속으로 뭔가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넘쳐날 때 1. 왕좌의 게임 2. 프리즌 브레이크 3. 이어즈 앤 이어즈 4. 메이즈 러너 5. 헝거게임 6. 마드리드 모던걸 (스페인어) - 상큼발랄 미국식 90-2000년대 초반 1. 라스트 홀리데이 2. 업타운 걸스 (다코타 패닝 연기) 3. 퀸카로 살아남는 법 4. 핫칙 5. 화이트 칙스 - 바람직한 느낌 & 괜찮은 듯 1. 그린북 2. 그린마일 ..

후기/영화 2020.12.01

내 방 여행하는 법 /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84 동료들의 애통 속에 최후를 맞이한 감수성 여린 한 젊은이의 죽음과 아침 찬 기운을 맞고 꽃받침 위에 져 버린 한 마리 나비의 죽음은 자연의 흐름 앞에선 하나 다를 바 없는 두 개의 사건일 뿐이다. 인간이란 그저 허공에 흩어져 버릴 운명을 지닌 유령 같은 존재며 한 조각 그림자이자 한 줄기 연기다. ... 아니다.내 친구는 무로 들어간 것이 아니다. 우리를 갈라놓은 그 장애가 어떤 것이든 나는 그를 다시 만나리라. 공허한 삼단논법으로 희망의 집을 짓는 게 아니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날벌레의 비상을 보고도 나는 확신한다. 전원의 풍경, 대기의 향기, 나를 둘러싼 이름 모를 매혹에 사고는 고양되고, 마침내 거부할 수 없는 영원에 대한 확신이 거침없이 내 영혼 속으로 밀고 들어와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후기/책 2020.11.28

교양노트 / 요네하라 마리

48 개성은 만인에게 알기 쉬운 형태로 바로 표면에 드러나는 유형과, 개성임을 알아채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유형이 있다. 단지 그것뿐이다. 최근의 생물학에서는 같은 종류의 동물 사이에도 꽤 큰 개체 차이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어느 개미 한 마리를 잡아서 그 특징을 개미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삼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 그 개미 한 마리만의 특징이었을 뿐인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53 시간을 헤아리는 방법과 명칭을 정할 때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설득력 있는 유래와 경위, 주장하는 쪽의 지배력과 영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은 한번 정해지면 그것을 수용한 모든 나라와 모든 사람의 것이 되고 만다. 그 근거 자체가 없어졌다고 해도 쉽사리 바꿀 수 없게 된다...

후기/책 2020.11.27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 / 이승우

32 희귀한 우연에 대한 끈질긴 사색은 운명론으로 유도되기 쉽다. 운명론은 종종 사랑의 불가항력적인 성격을 부각시킴으로써 사랑의 중요한 동력인 개인의 욕망과 선택을 가린다. 운명적인 사랑이 운위되는 자리에서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문장은 불순하거나 부정확한 것으로 판명된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문장이 올바른 유일한 문장이 된다. 나도 그랬지만, 사랑에 빠져 들어가는 순간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운명론자의 영혼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랑을 평가와 판결의 영역에서 제외시킨다. 이제 사랑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되고, 내가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것이 찾아온 것이 되고,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는 면책의 특권을 갖는다. 68 사소한 기억들..

후기/책 2020.11.25

상냥한 폭력의 시대 / 정이현

9 일어나지 않은 일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은 뱉는 순간 허공에 흩어진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가장 깊은 안쪽에 가만히 모아두고 싶다. 그것이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30 함께 남자 쪽 친척의 결혼식엘 다녀오던 길이었는데 남자가 여자를 그런 자리에 데리고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여자는 알고 있었어. 그런 건 꼭 말로 듣지 않아도 알게 되는 법이니까. 평소 같으면 여자는 구태여 따라나서지 않았겠지만 그날은 달랐어. 이상하게도 꼭 한 번은 막무가내로 남자를 따라나서고 싶었던가 봐. 친척들에게 여자가 누구인지 소개해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심정이었어. 축의금 봉투를 내고 오랜만에 만..

후기/책 2020.11.24

프리즌 브레이크

S04 Ep12 티백: 우리는 우리 자아의 포로로서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살고 있다 We are captives of our own identities, living in prisons of our own creation. S04 Ep15 같은 사람이 고통에 처했는데 어떻게 안 돕겠나? 공감이란 건 우리가 짐승과 유일하게 다른 점이지 When a fellow human being is suffering, why would we not want to lend a hand? Empathy, Sara, it's the only thing that seperates us from the beasts.

후기/영화 2020.11.20

정신과 의사가 붓다에게 배운 트라우마 사용설명서 / 마크 엡스타인 (이성동 옮김)

36 트라우마로 남은 감정의 원인을 밝혀내는 문제는 그 감정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의 문제만큼은 중요하지 않다. 37 붓다는 자신의 트라우마가 어디서 왔는지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붓다는 공감이나 적절한 반응 같은 것을 이끌어내서 자신에게 필요한 내면 환경을 스스로 창조했다. 붓다의 성공은 우리 모두에게 훌륭한 모범이다. 우리가 직면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불편한 감정을 이용하여 우리 마음이 바로 넓은 바다가 되어야 한다. 47 배고프고 무엇이 필요하고 불편한 것을 해소하길 바랄 때, 아기가 격렬하고 무자비하게 자신의 욕구를 부모에게 표현한다는 것을 부모는 잘 안다. 부모는 본능적으로 이런 원초적인 감정에 반응하여, 아기가 이런 상황을 잘 견딜 수 있게, 아주..

후기/책 2020.11.04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 탕누어

24 정말로 진실하고 성실한 영혼들은 이러한 분류와 질서의 시스템이 대항할 수 없는 것으로서, 뒤흔들거나 제거한다는 것은 더더욱 논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마르크스는 최후의 낙관론자였지만 형편없이 실패하고 말았다. 벤야민은 평생 분류되거나 어떤 질서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했지만, 남들이 주장하는 것들에 대항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은 아주 작은 '사적 공간'뿐이었다. 25 위대한 세계 혁명이 이 모양으로 위축되어버린 데 대해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벤야민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 같은 범상한 사람들의 난처한 처지를 잘 이해할뿐더러 우리 능력의 한계를 동정하고 있으며, 우리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억지로 할 수 없는 일을 추구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

후기/책 2020.11.01